해야 할 일은 늘 제때 해내는데, 계획표도 비교적 잘 지키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는 날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늘 지쳐 있고, 하루를 끝내면 남아 있는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루가 촘촘할수록 컨디션이 더 빨리 바닥나는 이유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들의 하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적인 구조가 보인다. 하루가 촘촘하게 빈틈없이 짜여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거의 정해져 있다. 이 구조는 겉으로 보면 매우 성실하고 효율적인 하루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촘촘함이 에너지 소비를 전제로 한 구조라는 점이다. 일정표에는 언제 무엇을 할지만 적혀 있을 뿐,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에너지가 소모되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집중이 많이 필요한 일, 감정 노동이 섞인 일, 판단을 계속해야 하는 일들이 모두 같은 ‘일’로 취급된다.
이렇게 하루를 구성하면 몸과 뇌는 계속해서 다음 과제로 밀려간다. 한 일을 끝내자마자 바로 다음 일을 해야 하고, 그 사이에 멍해질 시간이나 숨을 고를 여유는 거의 없다. 잠깐 쉬는 시간조차 다음 일정 전에 잠깐이라는 성격을 띤다. 회복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다음 일을 위한 대기 시간일 뿐이다.
특히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일수록 빈 시간을 불안해한다. 계획표에 공백이 생기면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고, 비효율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의도적으로라도 하루를 꽉 채운다. 하지만 이 선택은 하루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완전히 무시한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하루가 끝나면 성취감은 있다. 해야 할 일을 해냈다는 만족감도 있다. 하지만 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에너지는 이미 낮 동안 다 소진됐고, 저녁은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탈진의 시간이 된다. 이런 하루가 반복되면, 컨디션은 점점 더 빠르게 바닥난다. 열심히 살고 있지만, 회복이 고려되지 않은 구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쉴 틈 없는 생산성이 일상이 될 때 생기는 착시
늘 지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생산성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다. 쉴틈없는 생산성이 착시로 생기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하루를 평가할 때 얼마나 쉬었는가보다 얼마나 해냈는가를 먼저 본다. 계획을 지켰는지, 목표를 달성했는지가 중요하다. 반대로 회복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평가 대상에서 쉽게 밀려난다.
이 사고방식에서는 쉬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쉬더라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쉬는 동안에도 이 시간에 뭘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서 휴식은 온전히 휴식이 되지 못하고, 다음 생산을 준비하는 불완전한 상태로 남는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장기화될수록 사람의 컨디션 기준이 왜곡된다는 점이다. 항상 피곤한 상태가 기본값이 된다. 예전에는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정이 이제는 버겁게 느껴지지만, 사람은 이를 컨디션 문제로 보지 않는다. 대신 요즘 집중력이 떨어졌나, 열정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석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살려고 한다. 계획을 더 세밀하게 짜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회복이 부족한 상태에서 생산성만 더 끌어올리려는 선택이다. 결과는 뻔하다. 컨디션은 더 빠르게 소모된다.
이렇게 쉴 틈 없는 생산성이 일상이 되면, 하루는 늘 긴장 상태가 된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바로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계획이 조금만 어긋나도 하루 전체가 무너진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회복할 여지가 전혀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구조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만성 피로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은 있지만, 몸은 계속해서 회복을 빚지고 있다.
바쁘기만 하고 회복이 없는 삶이 결국 남기는 것
이런 하루를 오래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쉬어도 개운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바쁘기만 하고 회복이 없는 삶이 결국 남긴것은 하루를 통째로 쉬어도 피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음 날이면 다시 지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이미 이 방식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위험한 이유는, 컨디션 저하가 극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쓰러지거나 명확한 경고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조금 부족한 상태가 이어진다. 집중력은 애매하고, 에너지는 늘 모자라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은 굴러간다.
그래서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몸은 이 구조에 적응한다. 깊게 회복하는 대신, 최소한으로 기능을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다. 하루를 버티는 데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를 배분하고, 그 이상은 포기한다. 그래서 하루를 끝내면 늘 탈진 상태가 되고, 다음 날도 비슷한 컨디션으로 시작한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내가 체력이 약해서, 관리를 못해서, 원래 이렇게 사는 게 힘든 거겠지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문제는 개인의 의지나 체력이 아니라, 회복이 전제되지 않은 하루 구조다.
계획은 잘 세우는데 늘 지쳐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감각에 비해, 회복은 한 번도 계획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바쁘기만 하고 회복이 없는 삶은 단기적으로는 성실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컨디션을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뜨리는 방식이다.